참 착한 사람
박노해
너무 착한 사람을 좋아하지 마라
그는 길들여진 자일 가능성이 크다
아닌 건 아니다 라고 말할 줄 모르고
언제나 아름다운 말을 하는 사람
긍정마인드로 누구나 칭찬하면서
고래도 상어도 춤추게 하는 사람
그는 비지니스맨이나 정치가일수는 있어도
영혼이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다
세상엔 옳음도 틀림도 없고
다만 다름이 있을 뿐이라며
진리의 등뼈도 양심의 모서리도
매끄럽게 닳아버린 사람
그의 열린듯한 자기 중심주의는
엄연한 기득권 세력을 강화시킨다
이대로 가면 세계가 더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면
우리 모두 착하게 잘 적응해내자
아니라면, 불화하고 탈주하고 저항하자
그래도 나는 착한 사람이 좋다
숨은 구조악의 실체를 직시하고
불의에 맞서 기꺼이 상처받으며
자신의 상처로 착한 세계를 꽃 피워가는
참 착한 사람
결단 앞에서
박노해
평소에는 생각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결단 앞에서는 단순해야 한다
옳은 결단은 언제나 내어주는 쪽이다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나면
새로운 복잡함과 역풍이 불어 닥치고
반드시 그 결단을 후회하게 되리라
그것을 얼마나 단순하게 잘 견뎌내느냐가
결단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진리는 언제나 복잡한 현실을 품고
가장 단순한 얼굴로 걸어가는 것이다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박노해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때로 잘못 들어선 어둠 속에서
끝내 자신의 빛나는 길 하나
탐탐한 어둠만큼 밝아보는 것이니
틀려야 맞춘다
박노해
대답마다 틀리는 아이야
인생은 단답이 아니다
당당히 말하고 열심히 틀려라
틀려야 맞춘다
너만의 빛나는 길은
잘못 내디딘 발자국들로 인하여
비로소 찾아지고 길이 되는 것이니
일마다 실패하는 아이야
인생은 잔머리가 아니다
끈질기게 도전하고 정직하게 실패하라
실패해야 이룬다
진정한 성공은
틀리고 실패해 헛된 걸 버려갈 때
마침내 나를 찾아 이룰 걸 이루는 것이니
참사람이 사는 법
박노해
손해보더라도 착하게
친절하게 살자
상처받더라도 정직하게
마음을 열고 살자
좀 뒤처지더라도 서로 돕고
함께 나누며 살자
우리 삶은 사람을 상대하기보다
하늘을 상대로 하는 것
우리 일은 세상을 빛을 보기보다
내 안의 빛을 찾는 것
3단
박노해
물건을 살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한 것 단단한 것 단아한 것
일을 할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사람을 볼 때면
3단을 생각한다
단순한가 단단한가 단아한가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