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1

어떻게 살 것인가

겨울방학을 하고 학교에서 멀어지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학기말이 될수록 교사는 미처 못다 한 진도를 나가고, 생기부 기록이라든지, 각종 반성회에 설문조사 제출,  업무 분장서 제출 등으로 할 일이 많은데 아이들은 해야 할 공부도 줄어들고 선생님도 뭔가 정신없어 보이고, 방학이 다가와서 그런지 더욱 방방 날뛰었다. 그런 아이들을 다잡고(?) 앞으로 억지로 끌고 가는 것도 겨울방학식을 끝으로 힘을 풀 수 있었다.  오랜만에 친정에 다녀오니 눈이 펄펄 날리고 쌓여 있었다. 겨울 내내 거제에선 눈 한가락도 볼 수 없는데 장수엔 지천이 눈이니 못해본 눈놀이를 이참에 다 하는 아이들이었다. 따뜻한 방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추운데 두 볼이 빨개져도, 운동화가 젖어 들어가고 모르고 눈밭에서 종일 노는 아이들이 어여뻤..

기록하기 기억하기

폭풍 같았던 한 주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나름 큰 학기말 행사가 끝나서 홀가분했지만 사회적, 국가적으로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큰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끝나지 않는 주말의 끝에 서 있다.그동안 우리나라엔 대통령과 관련하여 크고 작은? 정치적 이슈들이 늘 끊이질 않았지만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정치적 상황에 한번 빠지면 그대로 매몰되어 버리는 성미라서 너무 편향되어버리진 않을까 자체 검열이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요일 밤.아이 곁에서 잠을 자다가 문득 눈을 뜬 그 시각 12시. 아이가 깰까 살살 걸어 나와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들었던 그때. 어두운 거실을 밝히는 형형한 핸드폰 불빛은 믿기 힘든 뉴스들이 쏟아내고 있었다. 비상계엄 선포   2024년 12월 3..

열매 세 알

가을 끝나무 끝 달린 열매 세 알그 안에 담긴 세 계절손바닥 위에 두었더니내내 따뜻하다.11월은 주말마다 행사가 있어서 바빴지만 이번 주말은 남편은 김장을 하러 혼자 시댁에 가는 덕분에 여유 있었다. 주말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은 여전해서 쉬는 중간중간마다 빨래를 돌리고 옷가지를 정리하느라 분주하긴 해도 홀가분한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과 토요일 오전에 도서관에 갔다. 매일 차를 타고 가는 길을 처음으로 걸어가 보았다. 집에서 차 타고 5분이면 금세 도착했던 곳이 내리막길, 골목길, 횡단보도, 은행나무, 상점가에 운동장을 돌아서 오르막길을 지나서야 도착했다. 헥헥 대며 도착하니 말없이 책 몇 권을 고르더니 저마다 좋아하는 자리에 앉는다. 한 시간가량 잔잔한 시간이 찾아왔고, 가끔 아이들이 앉은자리를 힐끔..

서울에 살지 못해서

5학년 2학기 사회는 단 한 권의 책 안에 반만년의 우리 역사를 담는다. 당연히 엄청나게 축소하고, 간략하게,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맥락보다는 굵직굵직한 사건 위주의 단편적인 수업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하나 세세히 짚고 나가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아이들의 집중력 저하와 오히려 역사를 어려워할 것 같아 적당히 타협하며 수업을 하고 있다. 내 수업 자료는 대부분 내가 읽은 역사책과 역사저널 그날, 그리고 홍진경 씨가 하는 공부왕 찐천재 유튜브 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역사책은 큰별선생님 최태성의 별별한국사 1~7권까지 시리즈로 나온 책과 한국사개념사전을 중심으로 한다. 별별한국사는 교과서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좀 더 자세한  시대적 상황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특히 삽화가 초등학생들이 이..

네가 온다

물먹은 타이어가 빗길을 가르며 달린다새로 칠한 횡단보도 위에네가 아닌 발소리들로 요란하다덜컹거리며 몰려오는 바람 너머비와 바람이 뒤엉켜 가을 잎들이 우수수 몸을 떤다며칠 전 잃어버렸다던 우산 대신살 하나가 나간노란 우산이 가까워진다텀벙거렸다가촐싹거렸다가내달렸다가이내 빨간 신호엔 숨을 고르는 너.네가 온다. 빗소리가 잦아들고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엄마!   요즘 아들과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이 아이가 만드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조심하는데도 어김없이 뒤엉켜버린다. 쉽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일이 반복되니 안 그래도 바쁜 아침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버린다.내가 도발에 넘어가버리면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지고 그게 매일 반복이 된다. 화를 다스리는 ..

저기 달이 있어

저기 달이 있어.딸의 침대에 같이 누워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단단한 달이 창문 밖으로 둥그렇다.환하고 둥그런 달빛이 어둔 방 창문 사이로 들어와조용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잠시 그렇게 누워 있다가아이의 고른 숨소리에 일어서서 다시 달을 보았다.거기 있어주었구나.거기 있어 줘서 고맙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겨우 12시가 안 된 시각이었다.다시 자려다가 오랜만에 눈뜬 새벽이 아까워서 앉아 있는데 딸아이 방이 열린다.잠결에 볼일을 보고 물을 마신 아이가 같이 자기 방으로 가자며 이끌어 옆에 누웠다.한번 깬 잠이 쉽게 오지 않아 가만히 있는데 어느새 고른 아이의 숨소리가 들렸다.됐다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에 희고 동그란 달이 박혀 있었다. "저기..

글이 곧 길이다

"안내면 진다 가위바위보"밖에서 들려오는 어느 집 아이의 목소리가 10층인 우리 집까지 들린다. 일요일 오후 아이들의 온갖 소리로 가득해야 할 집에 나 혼자뿐이다. 거의 일주일 만에 집에 온 아빠와 아이들이 점심때쯤 나갔는데 아직까지 안 들어온다.  불안과 행복의 그 어딘가 언저리에 글을 쓴다. 싱크대엔 아까 먹었던 그릇들이 어지럽고, 소파 위 쿠션은 제멋대로에, 빨랫감은 산더미인데 그것들을 제쳐 두고 글을 쓴다.나는 글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브런치에 글을 쓴 것은 2년 정도 되었다. 누군가 보여주려고 시작한 글쓰기가 아니라 흘러가는 하루와 생각들을 잡아두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일주일에 보통 한 번.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보통의 날들을 담담히 담아보고 싶었다. 100개가..

서울에 살지 못해서

5학년 2학기 사회는 단 한 권의 책 안에 반만년의 우리 역사를 담는다. 당연히 엄청나게 축소하고, 간략하게,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맥락보다는 굵직굵직한 사건 위주의 단편적인 수업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하나 세세히 짚고 나가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아이들의 집중력 저하와 오히려 역사를 어려워할 것 같아 적당히 타협하며 수업을 하고 있다. 내 수업 자료는 대부분 내가 읽은 역사책과 역사저널 그날, 그리고 홍진경 씨가 하는 공부왕 찐천재 유튜브 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역사책은 큰별선생님 최태성의 별별한국사 1~7권까지 시리즈로 나온 책과 한국사개념사전을 중심으로 한다. 별별한국사는 교과서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좀 더 자세한  시대적 상황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특히 삽화가 초등학생들이 이..

열매 세 알

가을 끝나무 끝 달린 열매 세 알그 안에 담긴 세 계절손바닥 위에 두었더니내내 따뜻하다.11월은 주말마다 행사가 있어서 바빴지만 이번 주말은 남편은 김장을 하러 혼자 시댁에 가는 덕분에 여유 있었다. 주말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은 여전해서 쉬는 중간중간마다 빨래를 돌리고 옷가지를 정리하느라 분주하긴 해도 홀가분한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과 토요일 오전에 도서관에 갔다. 매일 차를 타고 가는 길을 처음으로 걸어가 보았다. 집에서 차 타고 5분이면 금세 도착했던 곳이 내리막길, 골목길, 횡단보도, 은행나무, 상점가에 운동장을 돌아서 오르막길을 지나서야 도착했다. 헥헥 대며 도착하니 말없이 책 몇 권을 고르더니 저마다 좋아하는 자리에 앉는다. 한 시간가량 잔잔한 시간이 찾아왔고, 가끔 아이들이 앉은자리를 힐끔..

내 방에 들어오지 마

짧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있다.이제 밤 기온이 조금은 내려갔는지 밤에 자다 깨서 거실에서 잘 때면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되었다.새벽 수영도 다녀왔고, 방과후학교 금방 다녀온 딸과 거실에 함께 있으니 부산하고 소란했던 어제가 아득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홀가분해졌다는 것! 내 마음이 아니라 우리 집이 홀쭉해졌다. 방학 동안 꼭 해야 하는 것이 세 가지 있었다. 1. 시부모님과의 제주도 여행2. 아이들 건강검진 및 구강검진3. 아이들 방 만들어주기 이 중에서 가장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 아이들 방 만들어주기였다.초등학교 3학년이 된 첫째 아이는 올해 들어 줄기차게 자신만의 공간을 원했다. 2살 터울의 남동생과 떨어져서 어느덧 자기 방을 갖고 독립하길 주장한 것이다. 물론 동생이 워낙 같이 지내기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