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하고 학교에서 멀어지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학기말이 될수록 교사는 미처 못다 한 진도를 나가고, 생기부 기록이라든지, 각종 반성회에 설문조사 제출, 업무 분장서 제출 등으로 할 일이 많은데 아이들은 해야 할 공부도 줄어들고 선생님도 뭔가 정신없어 보이고, 방학이 다가와서 그런지 더욱 방방 날뛰었다. 그런 아이들을 다잡고(?) 앞으로 억지로 끌고 가는 것도 겨울방학식을 끝으로 힘을 풀 수 있었다.
오랜만에 친정에 다녀오니 눈이 펄펄 날리고 쌓여 있었다. 겨울 내내 거제에선 눈 한가락도 볼 수 없는데 장수엔 지천이 눈이니 못해본 눈놀이를 이참에 다 하는 아이들이었다. 따뜻한 방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추운데 두 볼이 빨개져도, 운동화가 젖어 들어가고 모르고 눈밭에서 종일 노는 아이들이 어여뻤다.

진짜 방학인가 싶은 게 그렇게 들락날락했던 선생님들 커뮤니티도 발길을 끊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떤 선생님이 어떤 고민을 올리셨는지, 오늘 수업 자료로 쓸 만한 것은 있는지 찾아보거나 내가 올린 글에 좋아요, 댓글을 찾아보는 게 일상이었는데 방학이니 굳이 들어갈 일이 없었다.
따로 SNS를 하진 않아도 여기에 글을 올리고 그 글에 답변을 받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는데 방학을 하니 크게 재미있지도 않다. 예전엔 수업 자료를 일방적으로 받아쓰기만 했는데 그것도 연차가 쌓이니 민망한 일이어서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내가 만든 자료는 올리게 되었다. 이런 자료도 쓸까 싶은 자료였지만 보는 선생님들이 계시고, 고맙고 좋은 자료라며 댓글도 남겨 주니 자료를 올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자료를 공유하게 된 것이 최근 3-4년 정도 되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자료를 올리면 금방 좋아요나 댓글이 달려서 그것 확인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고, 자료를 올릴 때마다, 또는 자료를 받아보는 선생님들이 많으면 포인트도 올라가고, 물론 그 포인트가 어떤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걸 확인하는 것도 하루의 즐거움이었다.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자료를 공유할 때도 있었지만, 사실 다들 잘 알아서 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나 역시 선생님들이 주신 자료는 꼭 필요한 때 아니면 안 쓰는 경우도 많아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자료를 공유하는 것은 잘하지 않는데 어느 순간 같은 학년 선생님들께서 내가 자료를 올리는 것을 아는 분들이 생겼다. 그걸 말씀해 주실 때 민망해서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 내심 뿌듯한 것도 부정하진 못하겠다.
5학년 10반, 나 빼고 9분의 동학년 선생님들은 모두 다 좋은 분들이시다. 행동특성 종합의견 쓰는 것처럼 한 문장씩 써보면
내가 한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게 하라!
수많은 학년 계획과 업무를 혼자서 처리하느라 바쁜데도 늘 겸손하신 부장님.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며 친밀한 사이를 맺는 선생님.
발명, 영재 교육에 전문가라 출장으로 늘 바쁘셔도 학급 관리도 늘 잘하시는 선생님.
새로운 문물(?)을 나같이 깜깜이 교사에게 알려주는 얼리어답터 선생님.
오랜 경력으로 각종 학교 업무 처리에 능숙하여 언제나 조언을 주시는 선생님.
교대를 갓 졸업하고 학교로 온 열정 가득한 젊은 선생님.
각종 학습 준비물 및 예산 활용을 기가 막히게 잘 파악하고 운영하는 선생님.
우리 아이들 담임 선생님이 꼭 되어주셨으면 좋겠는 마음 따뜻하신 선생님.
그리고 대화할 때 너무 편하고, 밝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힘을 주시는 선생님까지 9분의 동학년 선생님들이 계셔서 올 한 해도 무사히, 잘 지나갈 수 있었다.
이중 한 선생님께서는 학교에 처음 온 날부터 먼저 인사하고 말 걸어 주셔서 고마웠는데 동학년까지 되어서 혼자서 내적 친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 계속 내 얼굴을 보며 갸웃거리시는 거다.
-선생님!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예? 글쎄요? 여기 동네에서 오래 살아서 오다가다 만나지 않았을까요?
선생님도 나도, 같은 동네 이웃한 아파트에 10년 이상 살았기 때문에 오다가다 만났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안면이 없는데 선생님께서는 나를 콕 집어 어디서 봤다는 말씀을 하셨기에 그동안 나의 행동반경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어린이집? 유치원? 병원? 마트? 아파트 단지 놀이터?
선생님 인상이 매우 좋으시지만 내 기억에는 똑 떨어지지 않아서 몇 번 생각하다 말았는데 선생님께선 기어이 기억하시고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 서울 집회! 버스 안이요!
작년 여름 서울 여의도 집회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소였다.
선생님께서 나를 똑똑히 기억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날 버스 안에서 생긴 일이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작년 여름, 그 뜨거운 서울 한복판에 전국의 선생님들이 각 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여의도에 모여 처음으로 선생님들의 고통을 한 목소리로 외쳤던 그때! 나도 딱 한번 동참했다. 7월 말부터 시작된 집회에 계획된 가족 여행 때문에 가지 못하다가 8월 중순이 되어서야 처음 참여했다. 위아래 까만 옷을 입고, 삼복더위를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비 모자와 팔토시, 얼음물을 장전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거제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탔었다.




버스는 아침부터 모인 선생님들 시원하게 가라고 에어컨을 최대로 켜놓은 상태라서, 바람을 조금 줄이려고 에어컨 조절 다이얼?을 돌리는데 갑자기 그 부분이 몽땅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머리에 꽝 부딪쳤다. 에어컨 패널은 전선으로 연결되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나는 황당해서 머리 아픈 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원래대로 끼워 넣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같은 학교 선생님 한분도 계셔서 도와주셨고 뒷자리에 앉아있던 어떤 선생님 한분이 같이 에어컨을 들고 끼우는 것을 도와주셨는데 바로 그분이 동학년 선생님이 된 것이다.
참 고마운 분이라 나중에 버스에서 내릴 때 고맙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기도 했고 사실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나 인사 한 마디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그분을 동학년으로 다시 만났고 나는 기억하지 못했던 그때일을 떠올려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감사한 마음도 컸지만 사람 인연이라는 것이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참 신기했었다.
그렇게 동학년이 된 일 년 동안 뵐 때마다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도움도 많이 주셔서 고마웠던 선생님이셨는데 얼마 전 그때 일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선생님이 한마디 또 하셨다.
-선생님, 나는 그때 선생님이 버스에서 했던 행동이 계속 기억이 났어요.
-진짜요? 그때 에어컨도 안되고 추워서 뒤로 갔었는데? 제가 뭐 더 한 일이 었었어요?
-맞아요! 근데 선생님이 뒤로 가기 전에 기사님한테 에어컨 고장 난 일을 다 말했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게 쉽지 않은데 도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예? 제가 한 일이니까 사실대로 말씀드린 거였는데요.
-그런 일들이 오래 기억나더라고요. 내가 원래 도덕적인 사람을 좋아해요.
사람마다 도덕적인 행동에는 기준이 다들 다를 것이다. 그때 내가 한 단순한 행동 때문에 내가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억으로 오래 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놀랍고 창피하기도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최근에 다시 읽기 시작한 유시민 작가의 책이다.
삶과 정의와, 죽은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있어 옮겨본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밀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바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사람마다 인생을 다르게 산다.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삶이 있다.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 가늠하는 객관적 기준은 없다.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어떤 삶이든 훌륭할 수 있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37-38쪽 발췌-
지난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평가하는 것은 평가하는 사람마다 자신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고 그 삶이 훌륭한지의 여부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방식대로 살 때 결정되는 것이다.
순간마다 하는 모든 행동들이 모두 내 선택으로 이뤄졌고, 평소 내 생각과 생활 태도가 반영되었으며 그것이 나라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나름의 방식이었으므로 내 행동이 바로 나였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실수도 잦았고,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해 화도 많이 냈고, 본능을 억누르지 못해 방종했던 일도 많았지만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누군가에게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말도 들었고, 작은 도움이나마 나눔을 했던 경험 때문에 한 해가 또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 헛헛하진 않아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