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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와 바람

추석동안 묵은 빨래를 끝내놓고씻으러 들어가려다가빨래들만 이 시원하고 단 바람을쐬는 것이 아까워나도 빨래처럼 널어두었다 한글날 태극기가 휘릭휘릭쉬지않고 나부끼고옷걸이 빨래가 걸린 자리에서요리조리 바람을 고르게 맞을동안 몇날 며칠째인지 젖어있던이 몸도 서서히말라가는가 쪼그라드는가사그라드는가 날리워지는가 늦은 오후 사람들 소리 잦아들어가는데바람은 구름도 밀어버리고건조대 가득 널어둔 빨래마다무거운 축축함도 거둬버리고마음 속속들이 돌아다니느라 바쁘다 빨래가 다 마를 때 마음도 마르려나마음이 마를때까지바람을 가둬 놓아야하나.

가을 오후, 내가 본 것들

사철나무, 남천, 조팝나무, 은행나무, 칡, 갈대,왜가리 한 마리, 참새떼.남자아이들, 물수제비 뜨는 형제.자전거 타고 돌아가는 아저씨들.까만 강아지 뒤를 따르는 중년 부부.머리에 닿을 것 같은 다리 구조물.물속에 머리 박고 있는 오리 두 마리.앞서가는 아버지 자전거 한대뒤따라 자전거 타고 가는 아들.어느새 높아진 하늘 길게 흐르는 구름.단정하게 묶은 머리칼이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너. 도서관에서 식곤증에 꾸벅꾸벅 졸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근육통이 있다는 딸 말에 새로 생긴 산책로에 갔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벌써 늦은 오후로 가득한 산책로에 들어갔는데, 입이 시렸다. 출발 시간 오후 5시 6분.천천히 아이스크림이 녹는 시간만큼 더디 걸었다.아사삭 입속에서 녹는 아이스크림 덕분에 조용한 딸과 내딛는 발..

책제목

기나긴 이별너에게도 안녕이수영 그만두기자기만의 집애도의 기술 오늘 도서관에서 데려온 책들침대 옆에 두고 모로누워 돌아보니내 마음이 쌓여있다. 삶과 삶 사이에쉼과 일 사이에사람과 사람 사이에틈 사이로 가둬둔마음이 기어이 나오려나보다. 수천 수만권의 책 속에서고르고 고른 책이었는데눈길이 머무른 곳에 있던 책이라그곳에 두기 미안해 들고 왔는데쌓아놓고 보니 가져온 것은 책이 아니라내 마음이었더라. -기나긴 이별 : 레이먼드 챈들러-너에게도 안녕이 : 나태주-수영 그만두기 : 린 새프턴-자기만의 집 : 전경린-애도의 기술 : 박우란

모르는 척

주말이라 아침에 늘어지게 잤다.간밤에 비가 왔었는지 살짝 열린베란다 창문 틈새로 물이 들어와서 닦았다.먼저 일어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어서다시 침대에 비스듬이 누웠다.뭔가 빠져나간 느낌 조금.모르는 척한다. 기어코 다시 일어나서간단히 집안일을 하고 커피를 한잔 뜨겁게 탔다.달달하고 쌉쌀하게 목을 타고 내려갈 때 따뜻했다.어제 읽다 만 책을 펴고 옆엔아직 반이나 남은 커피가 남아있다.그런데 뭔가 모자란 느낌 조금. 아닌 척한다. 산허리를 감고 있던 구름이 어느새 물러나고여름에서 가을로 변한 공기가 온 동네를 휘감고 있다.바람이 방안 가득 들어와서건조대에 늘어놓은 빨래를 건들다가거실에 앉아 놀고 있는 아이들 머리칼도 흔들다가이윽고 침대에 누운 나에게까지 왔을 때시원했다.뭔가 서늘하게 빈 느낌. 모..

부서지는 아이들 -다정한 양육은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가

부서지는 아이들 -다정한 양육은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가저자 : 애비게일 슈라이어 57쪽 정신 건강 전문가들은 자신의 개입 방식에만 관심이 있었다. 자녀에게서 스마트폰을 빼앗는 것은 어느 부모라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이의 심리 장애를 진단하거나 정신과 약 처방을 받으라고 권고하는 것은 오직 심리 전문가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도 있었을 가장 중요한 행동은 그들의 전문 지식이 필요 없는 행동이었다. 사실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모든 어른이 큰 실수를 저질러왔다. 왜 부모들은 점점 더 어린 자녀에게 이 기기를 계속 사줄까? 스마트폰이 아닌 일반 폴더폰도 비상시에 충분히 유용하고, 요즘 나오는 디지털 카메라는 과거 어느 대보다 품질도 좋고, 저렴한 데 말이다. 어째..

2025/독서 후기 2025.09.04

대한이 살았다 - 가자! 서울로 3편(끝)

뜨거운 여름이 아직도 절절 끓는다.뜨거운 여름이 아직도 절절 끓는다.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벌써 20여 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방학이 2주가 남았다. 남은 기간이 꽤 되는데도 아이들은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아쉽다고 방학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놈은 팔깁스를 하는 바람에 그 좋아하는 자전거도 못 타고 물놀이하러 바다랑 수영장도 못 가니 좀이 쑤시는 것이고, 집순이를 자처하는 딸은 평소에도 집에서 놀기를 제일 좋아하는터라 지나가는 날이 아쉬운 것이다.나도 그렇다. 이 더운 여름, 더 뜨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서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아이들은 명동 나들이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뜨겁게 시원했던 서울의 거리가 다시금 떠올랐다. 여행..

카테고리 없음 2025.08.22

가자 서울로 2편 - 서울 입성 실패담

서울에 대한 열망은 어릴 때부터 존재했다.최초로 서울에 갔던 기억은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6학년 겨울방학 서울에 사셨던 이모네 집에 갔을 때였다.외갓집 친척 모임이 매년 신정에 있었는데, 외삼촌 3분, 우리 집, 이모네 이렇게 다섯 집이 돌아가면서 모임을 주관했었다. 우리 집이나 큰 외삼촌네는 시골이니까 특별할 것은 없었는데, 모임 장소가 도시에 사는 이모네, 외삼촌네일 땐 그해 겨울방학 제일 기대되는 일이었다. 이모네 집에 처음 갔을 때가 벌써 3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도 몇 가지 장면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전주에서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까지 간 후, 다 늦은 저녁때였는데 엄마가 앞장을 서서 버스를 타고 이모네 집까지 갔던 기억. 그때 엄마가 줬던 동그라미 버스 토큰을 쥐었던 감촉. 흔들리는 버스를..

가자! 서울로 1편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아이들에게 어디로 놀러 가고 싶은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지난해 가을 1박 2일의 짧은 서울 여행이 영 아쉬웠는지 이번 여름 방학에도 서울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 한여름에 우리나라 어딘들 안 덥겠냐만은 천만명이 모여 사는 서울은 복잡하고 더 더울 텐데, 걱정스러우면서도 어디든 가보자는 마음에 숙소와 버스표를 예약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3박 4일이다. 사실 서울 여행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미 경험했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이 3살, 5살 때였는데 아이들 짐도 많고 무엇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든 나이였기 때문에 남편이 운전해서 서울에 갔다. 거제에서 서울까지 400킬로미터가 넘는 대장정을 겁도 없이 감행한 것이다. 중간중간 어지러울 아이들을 위해 휴게소에도 들러야 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어렸을 때 여름이면 외사촌, 이종사촌들이랑 외갓집에서 만나는 것이 제일 기대되는 이벤트였다. 서울에 사셨던 이모와 인천, 경기도에 사셨던 외삼촌들이 휴가 기간을 맞아 고향집(나에겐 외갓집)을 찾으셨기 때문에 덩달아 근처에 살았던 우리 가족들도 여름휴가를 같이 보냈다. 농사를 짓던 우리 부모님께선 여름이라고 따로 쉬는 날을 받아 휴가를 보내시진 않았어도 이모, 외삼촌들이 계시는 날엔 외갓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하루는 근처에 계곡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곤 했다. 보통 여름방학이 되고 1-2주 지난 8월 초에 오셨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나는 그날이 기다려졌다.맛있는 음식을 먹고, 놀러 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내 또래의 사촌들과 어울려 놀 생각에 그랬다.이모는 딸만 셋이었는데, 나와 같은 나이대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