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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지 못해서

5학년 2학기 사회는 단 한 권의 책 안에 반만년의 우리 역사를 담는다. 당연히 엄청나게 축소하고, 간략하게,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맥락보다는 굵직굵직한 사건 위주의 단편적인 수업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하나 세세히 짚고 나가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아이들의 집중력 저하와 오히려 역사를 어려워할 것 같아 적당히 타협하며 수업을 하고 있다. 내 수업 자료는 대부분 내가 읽은 역사책과 역사저널 그날, 그리고 홍진경 씨가 하는 공부왕 찐천재 유튜브 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역사책은 큰별선생님 최태성의 별별한국사 1~7권까지 시리즈로 나온 책과 한국사개념사전을 중심으로 한다. 별별한국사는 교과서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좀 더 자세한  시대적 상황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특히 삽화가 초등학생들이 이..

열매 세 알

가을 끝나무 끝 달린 열매 세 알그 안에 담긴 세 계절손바닥 위에 두었더니내내 따뜻하다.11월은 주말마다 행사가 있어서 바빴지만 이번 주말은 남편은 김장을 하러 혼자 시댁에 가는 덕분에 여유 있었다. 주말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은 여전해서 쉬는 중간중간마다 빨래를 돌리고 옷가지를 정리하느라 분주하긴 해도 홀가분한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과 토요일 오전에 도서관에 갔다. 매일 차를 타고 가는 길을 처음으로 걸어가 보았다. 집에서 차 타고 5분이면 금세 도착했던 곳이 내리막길, 골목길, 횡단보도, 은행나무, 상점가에 운동장을 돌아서 오르막길을 지나서야 도착했다. 헥헥 대며 도착하니 말없이 책 몇 권을 고르더니 저마다 좋아하는 자리에 앉는다. 한 시간가량 잔잔한 시간이 찾아왔고, 가끔 아이들이 앉은자리를 힐끔..

내 방에 들어오지 마

짧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있다.이제 밤 기온이 조금은 내려갔는지 밤에 자다 깨서 거실에서 잘 때면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되었다.새벽 수영도 다녀왔고, 방과후학교 금방 다녀온 딸과 거실에 함께 있으니 부산하고 소란했던 어제가 아득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홀가분해졌다는 것! 내 마음이 아니라 우리 집이 홀쭉해졌다. 방학 동안 꼭 해야 하는 것이 세 가지 있었다. 1. 시부모님과의 제주도 여행2. 아이들 건강검진 및 구강검진3. 아이들 방 만들어주기 이 중에서 가장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 아이들 방 만들어주기였다.초등학교 3학년이 된 첫째 아이는 올해 들어 줄기차게 자신만의 공간을 원했다. 2살 터울의 남동생과 떨어져서 어느덧 자기 방을 갖고 독립하길 주장한 것이다. 물론 동생이 워낙 같이 지내기 힘..

2년째 초급반입니다-수영의 목적

7월 말 방학을 하고 2주 동안 수영장에 못 갔다. 친정에도 갔었고, 시부모님과 제주도 여행도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수영장도 일주일은 휴가 기간이었기 때문에 나만 진도가 뒤처지진 않겠다 싶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워서 수영장에 안 갔던 기간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도 되기에 좋았다. 먹을 것도 마음껏 먹었고 2주 동안 몸도 마음도 편했는지 몸무게도 2킬로 이상 늘었다. 제주 여행 내내 3끼 이상 잘 먹고, 중간중간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아이들 먹는 과자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었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월요일 오랜만에 수영장에 갔는데 뭔가 긴장 어린 느낌이었다. 초보 레인 회원들이 모두 선생님 얼굴만 보고 있었다. 준비운동을 마치면 출발을 하려고 앞으로 모여 줄을 서는데 웅성웅성한 느낌이..

방학엔 계곡이지

방학엔 계곡이지by 커버 > 작가명 클릭">다시Aug 06. 2024늦은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아이들과 친정으로 갔다. 방학이면 일주일 정도 친정에 머물렀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궁금해서 전화했다. 방학했냐?""아니오. 곧 해요. 이번 방학이 늦어요. 방학하면 바로 갈게요." 방학 때가 넘은 것 같은데 아이들이 오지 않자 평소 딸에게 전화하는 일이 드문 아버지가 전화를 하신 것이다.그만큼 이번 여름방학은 늦게 시작되었고 한 학기 마무리가 더뎠다. 하지만 결국 학기가 종료되었고, 방학날 전날 미리 가방을 싸서 끝나자마자 친정으로 향했다. 친정에 가면 할 일은 뻔하다.일단 청소를 하고, 냉장고 정리를 한다. 혼자 사시는 아버지는 본인이 주무시고, 입고, 식사하는 딱 1인분 ..

아빠의 카톡 프로필

카톡을 자주 보지 않는다. 예전엔 카톡 프로필을 바꾸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고, 다른 사람들 프로필을 보면서 근황을 아는 것도 쏠쏠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것도 뜸해졌다. 카톡으로 안부를 나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지인들의 새로운 메시지보다 광고 문자, 개인정보 동의 문자 등이 더 많이 오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남편이 금요일 오전에 보냈다던 카톡도 일요일에서야 확인했다.이 정도면 정말 무심한 것도 맞다. 지난 주말 친정을 다녀온 이후 날씨가 더웠는데 아버지는 잘 계시는지 싶어 카톡을 하나 보낼까 하다가 아빠의 프로필을 열어봤다. 메인 프로필을 재작년에 우리 아이들과 갔던 덕유산 향적봉 등반 사진이 2년째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바탕 사진도 작년에 친척분들과 가셨던 한라산 등반 사진이다. 별 생각 옆이 왼..

유월이면

"엄마! 포로가 뭐야?"큰 아이의 말에 핸들을 잡은 두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현충일을 맞이해 인근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어린이 체험행사를 한다기에 가던 길이었다. 여름 맞이로 산뜻하게 머리를 자른 큰 아이는 바뀐 헤어 스타일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머리칼을 매만지는 중이었다. 포로, 사로잡힌 적. 그 단어가 흐린 하늘처럼 아득해지고 빛바래서 낡은 깃발같이 펄럭였다.우리가 간 곳은 거제 포로수용소다. 거제는 한국 전쟁 당시 인민군, 중공군 등 전쟁포로를 수용했던 큰 감옥이었다. 섬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극적으로 활용하여 17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포로들을 가두어 둔 곳말이다. 그 사실까지 모두 잊은 듯 초록의 나무와 후덥지근한 공기가 포로수용소 분수 광장 전체를 메웠다.아이들은 신이 났다.목요일인데 학교도..

잼 먹고 잼 먹고 - 잼은 사 먹는거야.

주말에 친정에 갔다.  더운 날씨에 아버지 잘 계시는지 궁금하여 오랜만에 간 친정 나들이였다.  토요일 점심때에 맞게 도착하여 아버지와 점심을 먹은 후 집에 올라왔다. 6월인데 벌써 일주일째 푹푹 쪘다. 이렇게 6월부터 더우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면 어떻게 될는지 이번 여름이 걱정이었다.아이들과 집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걷는데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뒷마당으로 향했다.십몇 년 전 이 집을 지을 때 뒷마당에 심었던 앵두나무가 빨간 앵두를 가득 달고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예감은 적중했다. 어느새 무성해진 가지와 잎사귀 사이로 빨간 앵두가 여기저기 잔뜩 달려있었다.  한 움큼 따서 입안에 털어 넣었다. 조금 때가 지난 것 같았지만 여전히 시고, 달큼한 과즙이 입 안 전체를 휘감았다. 엄마가 먹는 모습을 보자..

토요일에 출근하는 이유

토요일 오후, 더없이 한가로울 이 시간에 학교에 왔다. 디지털 새싹 캠프(본교 선생님이 하시는 정보화 수업)에 참가하는 딸을 데려다 줄 겸 교실에서 정리할 일이 있어 주말에 학교에 왔다. 어제 퇴근 전 교실 청소도 다 하고 나와서 깔끔한 교실에 들어선 마음도 산뜻했다. 격주로 토요일마다 수업을 했던 초임 시절엔 토요일 출근도 당연한 것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토요일에 학교에 왔다.딱히 큰 일은 없지만 나이스에 소소하게 정리할 것들이 있었다.1. 상담 기록(상담현황 간단히 기록)2.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 중 누가기록(문제행동이나 칭찬할만한 일들을 누가기록함)3. 수행평가 기록(수행평가 후 채점 및 나이스 기록)4. 출결 마감(매월 말 출결 서류 정리 및 마감) 주중엔 차분하게 앉아 이런 것들을 정리할 만한..

바람이 부는 언덕 - 거제 오수 언덕에서

바람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다.저녁 식사로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과 목살을 구워 먹고 두둑해진 배를 비스듬하게 뉘어 캠핑의 백미인 불멍을 시작하려고 했다. 쌓아 올린 장작 사이에 불꽃이 넘실거려 늦은 5월의 저녁을 덥혀줬다. 너른 캠핑장에 아무도 없이 우리 가족만 덩그러니 있어 불꽃 타닥타닥 타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점점 더 커지는 것은 그뿐만 아니었다.  바람 소리였다.요즘 인기 있는 에스파 'Supernova' 가사처럼 장작을 태운 불꽃은 바람을 맞아 거세게 일었다. 사건은 다가와 Ah Oh Ay거세게 커져가 Ah Oh Ay 올해 첫 캠핑이었다.더운 날씨를 못 견뎌하는 남편과 첫째 덕분에 한여름 캠핑은 어림없고, 주로 가을, 아침저녁으로 선선할 때 캠핑을 갔다. 좋은 시설에 편리한 캠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