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8

그날 밤 별빛은 밝았다

10월 29일 정말 오랜만에 아이들과 캠핑을 갔다. 재작년 이맘때 갔던 근교의 캠핑장이었다. 아이들은 모처럼 가는 캠핑에 몹시 설렜고 그 주 내내 캠핑에 대한 느낌과 설렘과 계획과 기타 등등을 쉴새 없이 이야기했다. 전날엔 문방구에 들러 텐트를 꾸밀 장식품도 몇 개 샀다. 아이들은 장식품보단 장난감에 관심이 많았지만 적당히 차단하고 텐트에 달아놓을 풍선과 가랜드를 사서 돌아왔다. 당일 아침, 얼마나 분주한지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모처럼의 토요일 아침인데도 7시도 안되어 일어났고 그보다 더 자고 싶은 엄마 아빠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겨우 눈을 떼고 아침 식사 준비부터 캠핑에 먹을 반찬 거리, 텐트, 침낭, 갈아 입을 옷, 의자, 테이블, 일회용품, 전기 담요 기타 등등 분주히 움직였다. 그만큼 신..

설렘과 긴장 사이

우리반 아이들과 만난 지 이제 2달이 다 되어 간다. 오랜만에 5학년 담임을 맡은지라 처음에는 많은 과목에 자신이 없었다. 영어와 과학 전담 시간을 빼고 나머지 국어, 수학, 사회, 체육, 음악, 미술, 실과, 도덕, 영어 1시간(영어 전담 선생님은 2시간, 내가 1시간 나눠서 한다.) 과목 중 매일 3-4개의 과목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버거웠다. 그것도 그럴 것이 육아 휴직 후 내가 맡은 학년이 1학년과 2학년이었고 국어, 수학, 통합이라는 비교적 적은 수의 과목만 준비하면 되었다. 내용이 쉽다고 가르치는 것이 쉬울리는 없었다. 국어와 수학은 1-2학년이 거부감 없이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많은 연수를 듣고 적용하고, 아이들 학습 기초를 쌓기 위해 나름대로 성실하게 수업을 했었다. 하지만 5학년..

수영의 목적

이젠 4시 40분이면 눈이 떠진다. 요즘 밤 9시에 잠이 들면 1시나 3시쯤 갑자기 잠에서 깬다. 벌써 일어날 시간인가 놀라서 겨우 눈꺼풀을 말아 올려 핸드폰을 보면 아직 여유가 있다. 그렇게 갑자기 깬 잠은 다시 들기 어려워 이래 저래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또 잠이 들지만 어김없이 4시 40분쯤 깬다. 뭉그적거리면서 갈까 말까를 천 번도 더 고민하다 오늘은 가기로 했다. 몸은 이미 일어나서 움직거리고 있는데 마음은 여전히 고민 중이다. 화요일에 수업 도중 도망을 쳐서 민망하기도 했고 이대로 안 가면 진짜 안 될 것 같아 일단 출발했다. 이번 주 화요일, 2주 만에 수영장에 갔다. 그동안 수영장 물 교체로 일주일 휴관을 했고 지난주는 소독을 한다면서 또 일주일을 쉬었다. 내 의지로 쉰 것도 아니..

너의 핸드폰

다섯 달 전에 육아휴직 후 달라진 것들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복직 후 한 달이 되었다. 복직 후 달라진 것은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달라졌다기보다 원래대로 돌아온 것인데 학교로 돌아온 내게 사람들은 다들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원래 있던 곳에서 잠시 떨어져 있다가 이제 다시 제자리에 왔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익숙한 듯 낯선 느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종종 느끼는 이런 낯섦이 힘들다는 증거일까? 낯선 것은 학교에서만은 아니었다. 집에서 평소엔 볼 수 없었던 낯선 장면들이 목격되었다. 그것은 아이의 휴대폰 때문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복직 몇 주 전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주었다. 8살인 첫째는 핸드폰을 언제 사줄 거냐는 말을 자주 했었는데 휴직 중이었을 때는 내가..

실수는 나의 힘

복직한 지 이제 3주가 되어간다. 그 사이에 추석 연휴가 있었고 큰 태풍이 두 번 지나갔다. 큰 태풍마다 등교 여부와 원격 수업 준비로 갈팡지팡 했고, 연휴는 짧지 않았지만 그리 길지도 않아 아직도 여름방학의 끝자락인 듯 날씨도 마음도 늘어졌었다. 그렇게 시간은 가서 3주가 흘렀다. 반 아이들은 순하고 열정이 넘쳤다. 아직 친해지기 전이라 그렇겠지만 무슨 말을 하든 호응을 잘해줘서 갖고 있는 것을 다 퍼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예전에 맡았던 1-2학년 아이들에게 했던 것보다 더 나긋하고 상냥하게 말을 하는 나를 보면 스스로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학교 일도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고 옆에서 도와주는 선생님이 계실 뿐더러 하던 일을 받아서 진행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 어렵지는 않은데.. 문제는 나였다. 1..

이런 명절

명절 전날, 뭔가 징조가 안 좋았다. 기분 좋게 수업을 마치고 교실 정리한 후 주차장에 갔는데 차 앞 범퍼가 긁혀 있었다. 학교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심하지 않았지만 누가 그랬는지 궁금했다. 블랙박스가 작동하지 않은지 꽤 되었기 때문에 바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근처에 주차된 차를 찍고 명절 끝난 후 해결해야지 생각하고 짐짓 침착한 듯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서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고 씻고 나오니 아버지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아버지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았다. 거칠고 쉰 듯한 목소리. 징조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코로나에 재확진되셨다며 추석에 오지 말라고 하셨다. 걸걸한 아버지 목소리는 지난번 확진되었을 때와 비슷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열은 심하지 않고 증상도 많이 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