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8

태풍이 온다기에

태풍이 점차 가까워 온다. 모두 일찍 잠이 들었다. 아이들 숨소리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고요히 방을 채운다. 오늘은 별일 없이 마음만 바쁜 날이었다. 태풍 때문에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은 원격수업으로 대체되었지만 원격수업의 주체인 나는 학교로 가야 했기에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았다. 평소와 비교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로 갔다. 7시 30분. 그렇게 일찍 갈 필요는 없었는데 마음만 급해서 일찍 갔다. 나보다 더 빨리 오신 유치원 선생님은 아무도 보지 않는 벽에 있는 먼지를 빗자루로 쓸고 계셨다. 나도 금요일에 급하게 나오느라 엉망인 교실을 쓸었다. 바람이 스산하게 분다. 비는 올듯 말 듯. 구름이 산에서 하늘로 올라가며 산머리를 가득 메운다. 이따금 떼로 움직이는 새들은 무엇을 피하는지 정신없이 날갯짓..

여름방학 바다 탐험(3) 여차 몽돌 해수욕장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간다. 지난주 목요일엔 오랜만에 비가 그쳤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그것은 이제 여름의 것이 아니었다. 여름은 매 순간 자신과 이별하고 있었다. 햇빛, 바람, 공기, 그림자, 사람들. 모두 조금씩 여름과 이별하는 중이었다. 오전에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교실에 들어갔다. 이전 선생님께서 물건 정리를 끝내 놓으셨던지 서랍장들이 대부분 비어있었다. 조금의 학습준비물과 책들, 종이류, 미술 준비물 등만 서가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일단 내가 먼저 할 일은 먼지를 닦는 일. 먼지는 틈새마다, 구석마다 소리없이 빼곡히 내려앉아 있었다. 그렇게 먼지를 다 닦고 나니 정작 내가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먼지를 바다 바람으로 날려버려야겠다. 이번 여름방학 바다탐험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거제의 ..

내가 살던 집

책 한 권을 읽었다. 최은영의 밝은 밤이라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옛날에 외할머니댁에서 지냈던 며칠을 추억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그 사람의 전부를 드러내는 것일까? 주인공이 새로 이사 온 회령의 아파트, 가까이 있었지만 몰라봤던 외할머니의 집, 자신의 이혼을 외면한 엄마의 집, 그리고 옛날 증조모, 고조모가 살던 회령 집, 대구로 피난을 가서 잠시 머물렀던 명숙 할머니의 집까지. 소설은 사람과 사람의 일들이었지만 나는 왠지 그 사람들이 머물렀던 집에 마음이 갔다. 나도 오래 살던 나의 옛날 집이 떠올랐다. 늦은 저녁, 마지막 버스를 타고 마을 다리에 도착하면 이웃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따라 익숙한 길을 걸어갔다. 올라가다 보면 동네를 내려보는 키 큰 가로등이 있었고 그 안쪽..

토지를 읽고 난 후

토지를 모두 읽었다. 4월 말 전집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8월 14일에 마지막 20권까지 모두 읽었다. 8000쪽 가까이 되는 책을 4개월에 걸쳐 읽으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어떻게 느꼈는지 곰곰이 되새기는 시간이 필요했다. 토지는 예전에 고등학교 때 1-2권 정도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한자 제목의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용이 모두 머리로 흘러들어오는 듯한 착각에 빠졌었다. 하지만 책은 무거웠고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많은 사람들의 심리 상태와 무지했던 시대 상황까지 읽을수록 헷갈려서 중도에 포기했다. 그랬는데 왜 다시 토지였을까? 허영심 때문이다. 토지 전집이 안방에 턱 하니 자리 잡은 모습은 책 꽤나 읽는 사람처럼 보이게 할 터였으니까. 약간의 목돈이 생겼을 때 다른 고민 없이 토지 전집을..

여름방학 바다 탐험 (2) - 학동 몽돌 해수욕장

서울에 비가 많이 와서 침수 피해가 크다는 뉴스 기사가 연일 잇달았다. 빗물에 자동차가 잠기고 거리에 쏟아진 빗물로 오도 가도 못해 차 위에서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앉아 있는 어떤 현자의 사진과 빗물 속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 막힌 배수로를 맨손으로 뚫어 의인으로 불리는 사람까지 며칠째 침수로 인한 사건 사고들로 인터넷 창마다 도배되었다. 안타까운 사건 사고로 어수선한 여름이다. 그에 비해 여기 남부 지방은 뭔가 잠잠했다.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있는데 비가 와서 난리가 난 윗 지방의 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만큼 거제는 며칠간 폭염이었다. 매우 밀도 높은 습기가 온 집안에 가득했고 선선한 바람은 아침에 잠깐 뿐이었다. 오전 9시만 넘어도 끈적이는 열기와 습도로 불쾌지수가 가파르게 올라갔고 아..

모처럼 둘이서

모처럼 우리 둘 뿐이었다. 항상 셋이거나(아들까지), 아니면 넷이었던(남편까지) 우리였지만 모처럼 딸과 나 둘 뿐이었다. 지난 금요일, 친정 대장정 8박 9일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귀가했을 때 나는 탈진 상태였다. 원래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저녁이면 방전되어 곯아떨어지는데 8박 9일을 살림과 육아 및 삼시 세 끼, 아이들과의 여행까지 아무리 깡이 좋아도 그건 내 역량을 최대치 끌어올려야 가능한 일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짐까지 모두 정리한 후로 방전됐다. 아이들은 모처럼 만난 아빠와 밤늦게까지 놀았고 오랜만에 아이들을 본 아이 아빠는 흐물흐물하게 누워있어야 하는 내 상태를 파악하고 그날 저녁, 다음날 아침까지 아이들을 챙기고 먹였다. 토요일은 시댁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억지로 억지로 일어나서..

외갓집에서의 8박 9일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어디든 가야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었다. 일단 우리 동네 안에서 바다로, 산으로, 그도 아니면 바운스나 레고 카페 등으로 돌아다녔다. 그래도 부족해서인지 아이들과 내 마음은 어디로든 가고 싶었고 외갓집을 언제 가냐고 성화였다. 친정 아버지만 계신 외갓집이 집보다 더 자유롭다고 여겼는지 외갓집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7월 마지막 날을 며칠 안 남기고 전북 장수의 외갓집으로 향했다. 때마침 남편의 휴가기간이었지만 맞물린 시운전 일정으로 이번 휴가는 반납하게 된 남편 없이 나 혼자 아이들을 챙기고 갈 예정이었다. 일주일 넘게 있을 예정이라 짐을 싸는 것도 일이었다. 아이들 옷가지부터 물놀이 도구, 여벌 신발, 모자, 캠핑용 의자 및 파라솔까지 야무지게 챙기니 자동차 트렁크도..

올해 독서 목록

매일 1권 책 읽기 - 투자 및 학습 관련 도서 읽기 1.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김수현) 2. 제로 투 원(피터 틸) 3. 초등수학(론 아하로니) 4. 돈의 비밀(조병학) 5. 완벽한 교육법 6. 파이어족으로 살기 7.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사요사키) 8. 돈의 시나리오(김정봉) 9. 나의 첫 투자 수업(김정환) 10. 월급쟁이 부자로 은퇴하라.(너나위) 11. 현명한 투자자(벤자민 그레이엄) 12. 거인의 포트폴리오(강환국) 13. 그릿(엔젤라 더크워스) 14. 엄마의 수학공부(전위성) 15. 부의 인문학(브라운스톤) 16. 생각의 비밀(김승호) 17. 혼자 있는 시간의 힘(사이토 다카시) 18. 부의 추월차선(엠제이 드마코) 19. 가난한 청년의 부자 공부(함태식) 20. 초등 1학년 공부..

2022/독서 후기 2022.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