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같았던 한 주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나름 큰 학기말 행사가 끝나서 홀가분했지만 사회적, 국가적으로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큰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끝나지 않는 주말의 끝에 서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엔 대통령과 관련하여 크고 작은? 정치적 이슈들이 늘 끊이질 않았지만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정치적 상황에 한번 빠지면 그대로 매몰되어 버리는 성미라서 너무 편향되어버리진 않을까 자체 검열이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요일 밤.
아이 곁에서 잠을 자다가 문득 눈을 뜬 그 시각 12시. 아이가 깰까 살살 걸어 나와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들었던 그때. 어두운 거실을 밝히는 형형한 핸드폰 불빛은 믿기 힘든 뉴스들이 쏟아내고 있었다.
비상계엄 선포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은 비상계엄이라는 격랑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대통령의 급작스런 비상계엄 선포도 충격이었지만 유튜브 실시간 라이브 뉴스 속 국회의 모습은 더 아수라장이었다. 중무장한 군인들이 좁은 국회 복도를 뛰어나오고 있었고, 그 앞에 선 사람들은 소파, 책상 같은 집기로 문을 봉쇄하고 있었으며 그런 바리케이드를 개머리판이라고 불리는 총기 뒤판으로 쿵쿵 치고 있는 모습.

영화? 드라마? 넷플릭스 새 시리즈의 예고편? 갖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실시간 라이브 속 사람들의 모습은 허구의 연기가 아닌 실제의 모습이었다. 이윽고 뿌연 연기가 나오더니 뉴스 속 앵커는 최루탄을 언급하며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소화기 분말이었지만 그 속에 갇힌 사람들은 콜록거리며 앞을 헤아릴 수 없는 백색 혼돈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내 머릿속과 같이.


화면은 다시 넘어가서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으로 넘어갔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상적에 서 있고,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이 앉거나 서서 이야기를 분주히 나누는 모습이 비쳤다. 성마른 고함 소리가 몇 번 빗발쳤으나 국회의장의 기다리란 말에 회의장은 다소 조용해졌다.
곧바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상정되었고, 190명 참석한 모든 국회의원이 참석하여 비상계엄은 해제되었다.

새벽 1시가 넘은 그 시각.
쿵쾅쿵쾅 요동치는 가슴은 영화 속의 흥미진진함과 달리 실제 상황에서 오는 공포로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게 진짜일리 없어.
잠에서 깬 후 1시간 남짓 시간들은 잠결에 꿈을 꿨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10시 반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11시 계엄군이 국회 출입문을 봉쇄하였으며
11시 반 계엄 사령관이 포고령을 발표하였고, 그 시각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들어오고 있었으며
12시 계엄군이 국회 본청에 진입을 시도하였고 (내가 보기 시작한 때)
4일 1시 국회 본회의에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상정되었고 곧바로 전원 찬성으로 통과 후 계엄군 해산
4시 10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해제하기까지
약 6시간 동안 눈을 뜨고 나는 역사로 기록될 그 시간을 두 눈을 부릅뜨고 목도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내가 마음 놓고 발디디며 살아 누비던 땅이 한순간에 끝을 알 수 없는 지하 몇 백 미터의 싱크홀이 된 느낌
숨 쉬는 것만큼 당연했던 자유와 안전이 한순간에 나가떨어지며 공포와 두려움이 사방을 꽉 에워싼 것 같은 6시간이었다.
비현실적인 현실.
거짓말 같은 사실.
앞뒤가 맞지 않는 반어와 역설.
아이들과 남편이 따뜻한 이불속에서 단잠을 자고 있는 그때
홀로 거실에서 휴대폰 속 실제하는 공포에 잠들지 못하는 나.
같은 집 안에 있는 가족인데도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데
그 먼 서울의 이야기가 얼마나 현실감각이 있었을까?
애써 뛰는 가슴을 누른 채 설핏 잠에 들었다.
5시 울리는 알람을 듣고 다시 일어나서 수영장에 갔다. 물살을 가르는 펄떡거리는 호흡이 끊이지 않는 수영장에서 다시 지난밤을 곱씹었을 때 그 이야기들은 너무 꿈같은 이야기였고, 아무 일이 없는 듯 언제나 그런 듯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기에 아연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뉴스를 켜니 그 시간들은 모두 실제였고, 비상계엄의 공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다섯 시 김건희 특검법이 찬성 198표, 반대 102표로 부결되었고, 투표를 마친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108명이 윤석열 탄핵소추안에는 투표하지 않고 그대로 국회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모습.
이번에는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이 지켜봤다.


이날 오전 대통령이 사과 같지 않은 사과 속에 우리당을 언급할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기대했던 두 건의 상정안이 모두 폐기되는 모습은 비상계엄의 공포에서 분노로 뒤바뀌었다.
뒤돌아 나간 105명의 뒷모습엔 일말의 후회도, 망설임도, 미안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사과해야 할 사람과
그 사람을 받들면서 호위했던 무리들.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어리석고 사악한패거리들을 단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억하는 것
그리고 소리 내는 것뿐이다.




뉴스 특보 중 오전 대통령의 말도 안 되는 사과를 보고 있는데, 보고 나서 8살 둘째가 하는 말이 명언이다.
엄마,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인데 대통령은 제대로 사과하는 것 같지 않아.
대통령으로 재직한 그 순간부터 대한민국을 최악의 상황까지 몰아붙이며 이 파국에 오게 한 장본인이 초등학교 1학년보다 못한 상황 인식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나라를 이제껏 있게 한 것은 촛불을 든 대다수의 선량하고 현명한 국민들이 있기에 앞으로의 대한민국에 조금은 힘을 보태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기록하고 기억하고 소리 내기.
거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