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나 혼자 있다

어쩌다 다문화 교육

다시봉봉 2022. 5. 2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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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학교 마치고 돌아올 때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아 둘째를 데리러 같이 갔다.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들고서. 

둘째 유치원 복도 앞에 가면 엄마 오는 시간은 어떻게 알았는지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아이를 보고 반가워한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둘째가 누나한테 가 있는 사이 선생님께서 어렵게 말을 꺼내신다.

 

-저기, 어머님.

-예? 선생님 (불안하다. 불안해.)

-오늘 **이가 친구 갈 때 친구 어머님도 계신데 외국인이라고 여러 번 말하더라고요. 놀리듯이요.

-예? (진정 놀랐음. 이 녀석 밖에서도 이러면 어떡하니)

-자기들끼리 어떻게 알았는지 놀리듯이 말해서 주의를 주었습니다. 집에서도 말씀 잘해주세요

-집에서는 전혀 그런 이야기를 안 해서 몰랐어요. 한 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무슨 일인지 얼떨떨했다.

우리 아이가 친구에게 외국인이라고 놀렸다는 것인데 이 녀석이 그것을 어찌 알고  톡 건드렸을까?

두 아이 손목을 양손에 잡고 차에 올라탔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먹을 생각에 들떠있다.

 

-**아? 오늘 친구랑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없었는데? 아이스크림 줘!

-알겠어. 아이스크림 먹고 이야기하자.

 

아이스크림을 꺼내 주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이 아이가 거부감 없이 말을 할 수 있을까?

급하기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 입을 다물 것이 빤해서 천천히 다시 이야기를 꺼낸다.

 

-오늘 친구 놀린 적 있어?

-응.  친구 갈 때 외국인이라고 놀렸어. (넌 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구나.)

-왜 그렇게 말했어? 누구한테 들었어?

-누나가 그 친구네 엄마 외국인이라고 했는데?

 

사실 둘째가 놀린 친구의 형과 첫째는 같은 반이다. 같은 동네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학교에서 친구 어머니가 외국인이라고 들어서 둘째에게 말해주었고 엄마한테는 따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친구한테 외국인이라고 했어? 친구는 **이랑 우리 동네에 같이 살고 있잖아.

-그냥 엄마가 외국인이라서 그렇게 말한 거야.

 

얼음으로 된 아이스크림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면서 아이는 우물우물 말했다.

자신이 말한 것이 놀린 것은 맞지만 사실을 말했기에 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그렇게 많이 다문화 교육을 했고 다문화 관련 연수도 1년에 한 번씩 꼭 받는데 백지 같이 하얀 아이의 머릿속에 생긴 개념을 어떻게 잡아 줄 것인지 잠시 막막했다.

 

-그리고! 나만 놀린 거 아니야. 친구들도 나 놀렸단 말이야.

-그래? (친구들과 같이 놀린 거야? 그럼 더 심각한데..) 친구들도 같이 놀렸다고?

-아니!!!! 친구들이 나 놀려서 나도 속상했어!

-아~ 그럼 그 친구가 너를 놀려서 너도 놀린거야?

-아니! 다른 친구들이 놀렸고 나도 속상했다고!!(다른 친구들이 놀렸는데 너는 왜 또 그 아이를 놀리니) 

-알겠어. 그럼 그 친구는 너를 안 놀렸는데 네가 외국인이라고 놀린 거네?

-응.

-친구 어머니가 외국인이면 그 친구도 외국인인 거야? 우리나라에 같이 살고 있고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인데?

-???

-친구 어머니가 태어나신 곳은 외국일 수 있지.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 여기서 가족들과 같이 살고 계시잖아. 특히 친구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니까 우리나라 사람이지. 안 그래?

-맞아. 

-사람이 태어난 곳은 다를 수 있고 생김새도 다를 수 있어. 그런데 나와 다르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 누구나 다 달라. 너랑 엄마는 생긴 것도 좀 다르고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모두 다르잖아. 

-나는 사마귀랑 뱀 좋아하는데 엄마는 싫어해.

-그래. 친구네 엄마도 태어난 곳이 다르시지만 여기에 같이 살고 있으니까 우리나라 사람이야.  사실 엄마는 친구네 엄마가 엄청 부러워. 다른 나라에서 사셨기 때문에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많으시고 외국어도 잘하실 테니까.

-맞아! 친구도 다른 나라 말 잘해.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갈 때쯤 나의 이야기도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올해 3월 멕시코로 해외 파견을 나간 동생네 가족이 생각났다.

-너, 땡땡이(조카)가 멕시코에서 친구들한테 외국인이라고 놀림받으면 어떨 것 같아?

-땡땡이형?

-그래. 아무런 잘못 없이 태어난 곳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리는 것은 하면 안 되는 행동이야. 

 

멕시코로 떠난 동생은 2년 동안 해외 지사에서 근무를 한다고 했다. 기간이 길어서 가족 모두 이주를 했는데 조카들의 나이가 7살 5살이라 해외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낯선 외국에서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는 조카들 곁에 부모가 있긴 하지만 항상 같이 있을 수 없기에 조카들이 맞닥뜨릴 불쾌한 상황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됐는지 억양이 높아졌나 보다.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깊이 있게 반성하거나 뉘우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럴만한 감정을 갖고 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세상은 지금보다 더 많은 만남과 교류를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누가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저 사람은 외국인,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구분이 어쩌면 당연할 나이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고 무엇하나 같지 않다는 그 사실 하나를 가르치는데 오후 내내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귀에 인이 박혀서인지 친구에게 사과하겠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이 미덥진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다문화교육을 했다.

학교에서는 교육과정 안에서 다문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이렇게 실생활에서 맞닥뜨렸을 때 영상이나 책으로 보던 것과는 달라 당황할 수 있다.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우리 아이는 그 본능에 충실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본능이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분명하기에 아이가 자연스럽게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분히 이야기를 해야 했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 

나와 다르다는 것이 틀리다는 말이 아닌 세상을 어른들부터 만들어줘야 하는데 참 어렵다.

그냥 친군데, 내 옆에 있는 놀면 재밌고 웃음이 나는 친구인데 외국인 한국인 뭐가 문제일까?

 

이런 경우 아니면 아이들은 그저 책이나 교육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고 형식적으로 익혔을지도 모른다. 가족들끼리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에 좋았지만 내 아이가 다른 아이를 놀려서 힘들게 했다는 말은 부모로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오늘 유치원에 가면 꼭 사과하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켰는지 조금 있다 확인해 봐야겠다. 사과도 하고 재미있게 놀았다고 하면 오늘도 아이스크림 하나 시원하게 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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