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4일의 연휴가 끝나고 학교로 무겁게 들어갔을 때 책상 위에 놓인 인쇄물이 눈에 띄었다. 연휴 전날 미리 인쇄해 두고 간 어버이날 편지지였다. 고학년들을 맡았을 땐 어버이날 준비는 하루 1-2시간이면 충분했다.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접거나, 오리고 색칠해서 뚝딱뚝딱 만든 편지지에 편지를 쓰면 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 중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수업 때 필요한 만들기와 이런 행사 때마다 쓸 수 있는 간단하고 다양한 만들기 키트를 공유하시는 분들이 많아 어버이날이 되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만들거리가 쏟아진다.
만들기 재료도 미리 다 준비했고, 어버이날까진 하루가 남았기 때문에 여유롭게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1학년이었다.
1교시 국어 수업, 2교시 수학 수업까지 하고 나니 3-4교시 2시간이 남았다.
1시간은 색칠해서 만드는 종이 꽃다발 만들기
나머지 한 시간은 효도 쿠폰 만들기 딱 들어맞았다.
하지만 점심시간 전 3교시는 40분이 아니라 심정적으로 30분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급식 전 손도 씻고 줄도 서야 하는데, 40분을 모두 채워 수업을 하면 뒤따라오는 2학년들의 급식 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지켜야 하는 룰이 1학년은 조금 일찍 마쳐서 급식을 먼저 먹는 것이었다.
종이 꽃다발은 말이 꽃다발이라 그렇지, 카네이션 비슷한 꽃이 여러 송이 있고, 그것을 색연필로 색칠한 후 오려서 두어 번 접기만 하면 완성이었다.
우리 아들 딸도 같은 꽃다발을 만들어서 외할아버지께 이미 드렸기 때문에 길어야 20분 정도면 다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손이 꼼꼼하고 빠른 4학년과, 뭐든 한 색깔로 밀어버리는 대충대충 2학년이라 짧은 시간에 끝난 것이 었고, 우리 1학년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뭐든 만들기를 하거나, 종이접기를 할 때 실물화상기로 직접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도 아이들 질문은 끝이 없다.
-선생님 꽃 색깔 무슨 색으로 해요?
-하고 싶은 색으로 하면 돼요!
-선생님이랑 똑같이 해도 돼요?
-응 그래도 되지만 자기고 좋아하는 색이나 부모님께서 좋아하는 색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선생님 사인펜으로 해도 돼요?
-사인펜으로 해도 되긴 하는데, 잉크가 번질 수도 있으니까 색연필로 전반적으로 칠하고, 사인펜은 강조할 때 하면 좋을 거야.
-네임펜도 써도 돼요?
-아니! 네임펜은 이름 쓸 때!
아이들보다 조금 더 빨리 만든 후 돌아다니면서 진행 상황을 보았을 때 아이들마다 속도도, 수준도 다 달랐다.
빨간색으로 꽃잎, 줄기까지 모두 칠하는 아이
무지개색으로 꽃잎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칠하는 아이
친구랑 이야기하느라 아직 시작도 못한 아이
색칠까지만 하라고 했는데 이미 다 해서 오리고 있는 아이
실수했다면서 엉엉 우는 아이까지.
실수한 아이는 종이를 다시 주고, 꼼꼼하게 못하는 아이에겐 부모님께서 좋아하실 얼굴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라고 응원하고. 영 진도가 느린 아이는 도와주면서 1시간을 마무리했을 때는 21명 중 3분의 2는 마무리를 했고, 나머지 아이들도 점심시간까지 하면 마무리가 될 것 같아 안도했다.
-아직 못한 친구들은 밥 먹고 와서 하면 되니까 손 씻고 오세요!
점심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4교시엔 부모님께 드릴 효도쿠폰 만들기를 했다. 미리 만들었던 꽃다발보다는 오리기와 종이접기 기술이 필요했다. 역시 아이들마다 완성도 정도와 속도가 달랐지만 아이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다. 쿠폰을 오리고 접는 것이 아직 힘든 친구들은 짜증을 부리면서도 마무리를 하고 싶어서 선생님을 다급하게 여기저기서 찾는다. 천수관음보살이 된 듯 사방팔방에서 부르는 아이들 곁에서 접기 오리신이 되어갔다. 4교시 40분을 온전히 썼는데도 시간이 모자랐다. 다 못한 아이들은 집에서 좀 더 마무리하라고 말하고 하교시켰다. 교실 바닥은 오린 후 버려진 종이로 엉망이었다. 아이들이 간 후 청소까지 해야 진짜 마무리였다.

아이들도 이미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어버이날 기념 다양한 만들기 경험이 나름대로 쌓여 있기 때문에 어버이날만큼은 부모님께 뭔가 드려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다. 보기에 삐뚤빼뚤 엉성하더라도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작지만 노력이 담긴 사랑의 편지라는 의미 부여를 잔뜩 하면서 만들기 때문에 작은 종이라고 무시할 순 없다.
아이들의 편지가 간단하고 볼품없는 종이로 되어 있다고 담긴 사랑까지 작지 않다.
1학년 아이들은 이렇게 부모님의 사랑을 표현한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사랑을 표현했을까?
어버이날 친정에 들어 아버지께 용돈을 조금 드리고, 건강식품도 선물이라고 드렸다. 외식을 하러 끼니때마다 나가니 식당마다 북적북적였다. 그 가운에 끼여 고기도 먹고, 중화요리도 먹었다. 아이들은 외할아버지 드린다고 휘리릭 날려 편지도 만들어 드렸다. 큰돈 들어가지 않아도, 소소하게 남들 하는 만큼 적당하게 어버이날을 보냈다는데 안도했다. 그리고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며 인사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내가 드렸던 용돈보다 더 많이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어 주시고, 드렸던 가벼운 선물보다 더 무겁게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작은 마음이 큰 마음으로 되돌아왔다.
어버이날이라고 키워주신 고마움에 대해 보답하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남들 보기에 민망하지만 않게, 혼자 계신 아버지 너무 쓸쓸하지 않게만 하면 된다는 생각정도. 나만, 우리 애들만 생각하는 수많은 날 중에서 잠깐을 떼어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을 갖는 것 정도였다.
그런 생각이 부끄럽게 아빠는 돌아가는 딸에게 끝까지 손 흔들어 주시고, 손자 손녀 가벼운 주머니를 무겁게 만들어주셨다. 작은 마음이 큰 마음으로, 드린 사랑보다 받은 사랑이 더 무거운 날이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앞으로 얼마나 될까 싶어 잠깐 마음이 시큰했던 날이었다.
어버이날 아침, 부모님께 카드 잘 드렸냐고 물어보니 저마다 답이 달랐다.
-어제저녁에 미리 드렸어요.
-엄마 출근하기 전에 아침에 드렸어요.
-몰래 주려고 했는데, 들켰어요.
-저는 선물을 8개나 했어요.(진짜?)
-엄마한테 용돈도 줬어요.(엥! 진짜?)
각자 다른 어버이날 풍경이겠지만 작은 마음이라도 표현할 수 있어 감사했고,
작은 마음이라도 받을 수 있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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