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이 태어나기 전에 여기서 만삭 화보를 찍었다.
공곶이로 가는 길은 우리집에서 가깝다. 아주터널을 지나 지세포를 따라 직진으로 가다보면 모래숲 와현 해수욕장 이정표가 나온다. 다시 와현해수욕장에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작지만 너른 바다를 안고 있는 예구항이 보인다.
예구항에 주차를 하면 관광객들을 위한 이정표가 둘 나오는데 그 중 왼쪽 길은 꽤 비탈진 길을 따라 십여분 올라가야 한다. 처음에는 매운 맛을 보여주는 길이지만 숨이 헉헉 차는 오르막길이 끝나면 이제 아찔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극단의 두 가지 길을 경험하려면 왼쪽 길이 좋다.
두번째 길은 이정표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 첫번째 길에 비해 비교적 완만한 경사인 이 길을 따라가면 우거진 동백나무 숲을 볼 수 있다. 오래된 숲 길 역시 오르 내리는 길이 계속 되긴 하지만 그렇게 가파르지 않아 천천히 숲 향기를 맡으면 걷다 보면 바다를 볼 수 있다. 물론 두번째 길은 첫번째 길보다 2배는 시간이 걸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번째 길을 선택하고 돌아올 때는 두번째 길을 따라 온다.
나 역시 공곶이를 갈 때 마다 그 코스를 이용했다.
하지만 혼자 가는 이 길은 내가 처음 느꼈던 그 길과 달리 참 가볍고 경쾌했다.
처음 공곶이를 갔을 때 사실 말하자면 끝까지 갔다 오지는 못했지만 그때는 홀몸이 아니었다.
집에만 있기 갑갑했던 임산부는 남편을 졸라 가을이 한창이던 그 때 공곶이를 찾았다.
처음 가 보는 길이었고 몸이 가볍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숲 속에 들어가서 마음껏 숲을 느낄 수 있었기에 가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다. 쉬엄쉬엄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길을 어찌어찌 올라갔지만 임신 8개월-9개월의 몸으로 내리막길은 도저히 아기를 위해서 도전할 수 없어 아쉽게 돌아와야했다. 그래서 끝까지 가 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두번째 갔을 때는 셋이었다.
첫째가 태어난 후 돌이 지났지만 아직 걸음마를 하지 못했고 어쨌든 외출을 하고 싶었떤 엄마의 성화에 못이겨 아기띠에 아이를 데리고 그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었다.
나는 몸은 가벼웠지만 아이를 안고 있는 남편을 보며 혹여 넘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천천히 길을 걸었다.
수선화가 바다를 노랗게 물들였지만 예쁜 수선화보다 내 아이가 더 예뻤기에 수선화를 온 마음으로 감상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되돌아 오는 길 역시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는 무리였기에 서둘러 고행을 끝내기를 바랬던 마음이었다.
그리고 어제 나 혼자 갔던 공곶이는 마음 속으로 그리워했던 노란 수선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예구항에 주차한 후 다 돌아보고 나오는데 걸린 시간이 1시간이 조금 넣는 시간이었다.
공곶이까지 가는 길이 내 기억보다 조금 더 짧았고 조금 더 위험했다. 아이들과 오지 않고 나 혼자 오길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걷는 내내 떨어진 동백이 초록으로 가득한 하늘과 대비되어 화사했고 간간이 잎 사이로 보이는 꽃잎은 더욱 붉었다.
오르락 내리락하던 걸음이 이제 좀 살겠다 싶었을 때 노란 수선화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아직 만개하지 않았지만 밭에 줄지어 피어있는 꽃무리를 보니 여기 다시 온 것이 참 오래도 걸렸다는 생각이었다.
관광객들은 평일 오전에 많지 않았고 밭을 일구시는 주인장 내외가 열심히 일하고 계셨다.
한 부부의 평생의 수고로움은 나같이 스쳐지나 간 사람에게도 몇 년간의 그리움으로 남을 만큼 이곳의 아름다움은 강렬했다. 바다는 더 푸르고 꽃들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자갈 가득한 바다에 앉아 건너편 마을을 바라본다. 마을을 둘러싼 바다를 바라본다.
둘 또는 셋이서 같이 온 다른 관광객들은 서로 서로 사진을 찍어 꽃 속에 있던 자신의 모습을 남긴다. 나 역시 아쉬운 마음을 사진 속에 담는다.
혼자라도 쓸쓸하지 않았던 이유는 노란 수선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세번째 온 공곶이. 내가 거제에 살면서 봄이면 꺼내보는 보물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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