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나 혼자 있다

걷기 예찬

다시봉봉 2022. 3. 2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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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30분에 일어났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좀더 잤는데 다원이는 벌써 일어나서 자기 침대에서 꼼지락거린다.
"산책 갈래?"
묻자 당연히 웃으면서 화답한다.
시언이가 자고 있으니 조심조심 준비했다. 간단히 옷을 껴입고 마스크를 한 채 밖으로 나갔다. 아침 기온 6도, 비까지 오고 있어 더 추웠다. 아침에, 그것도 비오는 날 아침에 산책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요즘은 밤으로 산책을 다니기 때문에 아침 모습을 보고 싶었기도 했다.
딸기 팝잇 가방에 이런 저런 물건을 챙기는 아이에게 가방 챙기지 말라고 했더니 입을 삐죽인다.
밖으로 나왔고 역시나 추웠다. 우산을 든 손이 매우 시려울 정도였지만 이내 걸으면서 생기는 내부의 열로 이정도 추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3월 중순. 비오는 봄날 아침엔 싱그러운 향이 가득하다. 얼마전까지 열심히 피어있던 매화는 이제 거의 다 졌고 목련이 그 뒤를 잇는다. 탐스런 목련은 참으로 아름답다.

약간 삐진 얼굴로 뒤 따르던 아이와 끝말잇기를 하면서 길을 걸었다. 아이 얼굴은 이내 밝아진다.
어려운 낱말도 잘 말을 한다.
너는 알까? 이 길을 엄마는 네가 뱃속에 꼼지락 대던 그때부터 걸어왔다는 것을...
임신 6개월 갑작스럽게 살이 많이 찌니까 담당 의사 선생님은 체중 조절을 권유하셨고 나는 그해 초가을, 해거름지는 시간에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2015년 9월부터 지금까지 7년이 넘게 나는 이 동네를 걷고 있다.

아이 아빠는 한창 바쁘던 시기여서 혼자 걸었다. 처음에는 혼자 걷는다는게 참 쓸쓸하고 외로웠다.
둘이 걷고 있는 부부를 보면 다른 길로 바꾸거나 다른 곳을 응시했다. 혼자 나온 것이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어느새 새벽길과 밤길을 혼자 걷는 것이 익숙해졌고 온전히 나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이기에 나만을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아이가 잠든 9시 이후에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혼자 나와 빠르게 걸었다. 팟캐스트를 듣거나 영어 공부를 하곤 했다.
복직을 한 후에는 때로는 출근 준비 전 6시, 때로는 아이들이 잠든 10시 무렵, 더 늦게도 나온 적도 많았다.
장소는 공설운동장부터 예전 살던 아파트 주변, 동네를 가로지르는 하천 주변, 아파트 산책로와 도로변.
어느 장소이든 내가 가는 시간대에는 사람이 적었고 나는 그 길을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급하게 때로는 빠르게 달리기도 했다. 음악 소리에 맞춰 느린 곡에는 여유롭게 걸을 때가 좋고 빠른 곡에는 숨이 차게 달리는게 좋았다.
아이들이 점저 크면서 30분정도 걸을 수 있는 체력이 길러졌을 때 다원이부터 가끔 산책에 동행했다.
아이가 있으면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걷는다. 이런저런 잔소리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느순간 달라진 자연의 모습을 같이 감상하게 된다. 그리고 같이 계획을 짜거나 힘들면 같이 앉아 쉬기도 한다.
혼자 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만 아이와 같이 하는 시간은 효율적일 필요가 없다. 그냥 너랑 내가 같이 있고 같이 걷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이다.
같이 누워 있다가 내일도 같이 산책할까? 물어보니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내일 아침은 공설운동장의 목련을 보러 가야겠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도 옆에 누워 같이 잠드는 경우가 많지만 요즘은 출근을 하지 않고 있어서인지 저녁 잠이 조금은 줄었다. 일어나서 간단히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다. 밤에 산책할 때는 아침보다는 수월하지만 그래도 나오기까지가 고민이 많다. 그냥 누워서 책이나 볼까 했지만 그래도 나오길 잘했다. 보름달이 떠있었다.
걸을 때 좋은 점 나만 생각할 수 있다는 것과 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걸을 때는 피아노 연습을 계획했고
경제 관련 유튜브를 들을 때는 경제 공부를 다짐한다.
그 외에도 앞으로의 계획, 다짐 같은 것을 되뇐다. 온전히 나로 집중되는 이 시간을 그래서 놓을 수 없나보다.
신체적 재능, 운동 감각이 없는 나에게 걷기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선택한 길과 시간에서 오롯이 나만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최대한 많이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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