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일곱 시 반쯤 다원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어제 2시 넘어서 잤기 때문에 피곤했지만 아이가 말간 얼굴로 다가와 아침 인사를 건네기에 피곤했던 몸도 에너지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커튼을 친 후 식탁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책을 보다가 문득 5월에 가족 여행을 갈까 짧은 생각이 들었고 검색을 해보았다. 괜찮은 리조트가 주말은 예약이 안되고 일요일 낀 월요일 화요일에 좋은 가격으로 나왔길래 남편에게 물어보니 단박에 거절을 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쉬는데 연속으로 쉬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5월에 시부모님 및 형제들과 여행을 가는 것은 기억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5월 5일 가족여행이 얘기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더 이상 이야기가 없어서 취소되거나 흐지부지 됐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그래도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있었는지 내가 가자고 한 우리 가족끼리의 여행 계획에 대해선 적극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이래저래 이야기하면서 괜찮은 날짜를 찾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짜증을 내며 박차고 일어났다. 조그맣게 들려온 험악한 말에 옆에서 아이는 책을 보다가 눈이 동그래져서 기막혀하는 내 얼굴은 애써 못 본 듯이 이내 책을 향한다.
다툼은 정말 급작스럽게 온다.
별일 아니었다. 남편이 내가 날짜를 말하는 것마다 안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통에 나는 빈정이 상해 있었고 남편은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여행과 관련 없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여주기를 서로 바랬고 그러지 않자 남편 먼저 불편한 감정을 쏟아버린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설레는 마음을 순간 짜증으로 바뀌고 상대에 대한 분노로 내 기분이 잠식당하는 것은 찰나였다. 그렇게 비오는 일요일 아침을 우중충하게 시작했다.
9시 넘어서 둘째가 일어났고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식사 자리에서도 냉랭한 기운이다. 아무리 따뜻한 국을 마셔도 마음이 서늘하다.
우리 부부의 싸움 패턴을 해를 거듭해도 비슷한 양상이다. 다툼이 일어나면 서로 시선을 피하고 존재를 무시하고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한다. 이를테면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혼자 있는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 감정의 기류를 아는지 모르는지 같이 놀자고 한다. 그러면 옆에 분명히 있는데도 없는 사람처럼 아이와만 대화를 한다. 각자 해야 할 집안일은 서로 암묵적으로 하지만 오랜 시간 해왔던 일이기에 의사소통은 없이 각자 알아서 한다.
문제는 사이에 끼여 있는 아이들이다.
언짢은 감정이 분명히 있기에 아이들에게도 편한 마음으로 대하기 힘들다. 아이들에게도 나의 이런 불편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오후에 청소를 시작할 때 거실에 널려있는 블록을 정리하라고 둘째에게 말했다. 당연히 절대 안된다고 정리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자 나의 마음에 다시 불덩이가 솟아났다. 나중에 다시 하면 된다고 말은 논리적으로 했지만 행동과 말투는 그렇지 않았다. 둘째는 엄마의 반응이 심상치 않은 것을 직감하고 바로 정리에 들어갔다. 불똥은 그림을 잘 그리고 놀고 있던 첫째에게 튀었다. 그림 그리던 거 그만하고 정리하라고 야멸차게 말해버렸다. 엄마에게 줄 거라고 아기자기하게 그림을 그리던 아이는 싸늘한 엄마의 표정과 말투를 금방 인지하고 그림 그리기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그렇게 청소를 시작한 아이들에게 간단히 지시하면 될 일을 불필요한 말과 행동으로 아이 역시 힘들게 한다. 아이들의 정리가 내 눈에 찰리 없는데도 아이들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기준으로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남편과의 다툼으로 인한 감정 소모가 아이들에게 불안을 드리우고 창의적인 아이들의 놀이방을 순식간에 정리해야 할 난장판이 되게 한다. 이런 내 모습에 혐오감이 들지만....널뛰는 마음이 진정이 안될 때가 있다.
결혼을 한지 8년 차이다. 3년의 연애 기간까지 합하면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고 지내왔는데도 이런 다툼이 생기면 생전 없던 증오와 적개심이 차올라 예전의 안 좋았던 기억까지 떠올라 힘들다.
아이들이 눈이 나를 보고 있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말투까지 닮아간다.
카랑카랑한 내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싶으면 그것은 아이들의 입에서다.
가벼운 일은 가볍게 다뤄야하는데 가볍지가 않고 한없이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비가 내일까지 온다고 하는데 우리 집안 분위기도 그렇게 어두워질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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