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독서 후기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다시봉봉 2022. 7. 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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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쪽 부분 발췌>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머 나는 내가 커서 작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스물네 살 때까지는 그 생각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게 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며 조만간 차분히 앉아 책 쓰는 일을 해야 하리란 의식을 갖고 있었다.

나는 삼남매의 둘째였고 아래위로 다섯 살씩 차이가 났으며, 아버지는 여덟 살이 될 때까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난 좀 외로웠고, 이내 남들이 싫어할 만한 버릇을 들이는 바람에 학창 시절 내내 인기가 없었따. 나는 외로운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 속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습관을 갖게 됐는데, 애초부터 나의 문학적 야심을 고립됐고 과소평가됐다는 느낌이 뒤섞여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을 통들어 써낸 심각한 글을 대여섯 페이지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네댓 살 때 처음으로 시를 썼는데, 내가 하는 말을 어머니가 기록한 것이었다. 지금으로선 그게 호랑이에 대한 시였고, 그 호랑이가 '의자 같은 이빨'을 가졌다는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 1914~1918년 전쟁이 터진 열한 살 때에는 애국시를 써서 지역신문에 실리게 되었고, 2년 뒤 키치너의 죽음에 부처 다른 애국시를 써서 역시 신문에 실렸다. 좀더 나이가 들어서는 서투르고 대개는 완성되지 못한 조지 시대 풍의 자연시를 이따금 쓰곤 했다. 두 번쯤은 단편소설을 시도했다가 엄청난 실패를 맛보기도 했따. 그 시절을 통틀어 내가 심각한 의도를 갖고서 실제로 종이에다 쓴 작품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사실 그 시절 내내 나는 문학적인 활동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먼저, 빠르고 쉽게, 그러면서 스스로 별 재미를 느끼지도 못하고 생산해내는 주문 제작식 작업이 있었다. 학교 과제 말고도 나는 지금 내 기준으로 보자면 경이로운 속도로 좀 장난스러운 시를 이따금 쓰곤 했고, 학교 잡지 편집 일을 돕기도 했다. 학교 잡지들은 더없이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었고, 지금으로치면 제일 싸구려 저널리즘에 들일 수고보다 훨씬 공을 덜 들이고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과 더불어 나는 15년 남직 동안 꽤 다른 유의 문학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걸은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 말하자면 내 마음속에서 존재하는 일기 비슷한 것을 계속해서 꾸며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공통된 습관이라 생각한다. 아주 어릴 때 나는 나 자신을 이를테면 로빈 후드라 상상하곤 했고, 짜릿한 모험을 하는 영웅으로 그려보곤 했따. 하지만 그런 나의 이야기는 어느새 조잡한 자아도취적 분위기를 벗어나더니, 갈수록 내가 겪은 일이나 본 것에 대한 단순한 묘사가 되어갔다. 말하자면 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몇 분씩 굴려보곤 했던 것이다. '그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따. 노란 햇살이 모슬린 커튼을 투과해 들어와, 그는 오른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창가고 가로질러 다. 거리에는 거북등누의 고양이가 떨어지는 낙엽 하나를 쫓고 있었다.' 등등. 이런 습성은 문학과는 상관없이 지내던 시절을 줄곧 거쳐 스물다섯 살 무렵까지 이어졌다. 비록 나는 적절한 낱말을 찾느라 애써야 했고 실제도로 그 묘사에 그토록 공을 들였던 것 같다. 내 이야기는 내가 연령대에 따라 흠모했던 여러 작가들의 문체를 분명히 반영했을 테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꼼꼼한 묘사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점은 언제나 똑같았다.

(289-291쪽 발췌)

 

내가 이런 배경 설명을 일일이 하는 것은, 어릴 때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한 작가의 동기를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나름의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며, 그것은 그가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다. 물론 그는 마땅히 자신의 기질을 다스려야 하고, 미성숙한 단계에 고착되거나 비뚤어진 심기에 매몰되는 경우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일찍이 받은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버린다면,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 자체가 없어져버릴 것이다. 

나는 생계 때문에 경우를 제외한다면, 글을 쓰는 동기는 네 가지라고 생각한다. 이 동기들은 작가들마다 다른 정도가 존재하며, 한 작가의 경우에도 시기별로나 시대 분위기 별로나 그 정도가 다를 것이다.

 

1. 순전한 이기심 :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 하는 건 허위다. 작가의 이런 특성은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법조인,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요컨대 최상층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성이다. 사람들 절대 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직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다. 그런가 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나는 진지한 작가들이 대체로 언론인에 비해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2.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운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자신이 체감한 바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는 소중하여 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다. 미학적인 동기가 상당히 약한 작가들도 많긴 하지만 팜플렛이나 교과서를 쓰는 저자라 해도 비실용적이지만 매력과 애정을 느끼는 낱말들과 문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글꼴이나 여백 같은 것들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 수가 있다. 철도 안내책자 수준을 넘어선다면 어떤 책고 미학적인 고려로부터 딱히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3. 역사적 충동 :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고이다.

 

이런 충동들이 얼마나 서로 충돌할지, 사람과 때에 따라 얼마나 오락가락할지는 알 만한 일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 번째 동기를 능가하는 사람이다. 평화로운 시대 같았으면 나는 화려하거나 묘사에 치중하는 책을 썼을지 모르며, 내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종의 팜플렉 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나는 안 맞는 직업을 택하여 5년을 지냈고 그뒤로 빈곤과 좌절을 겪었따. 그로 인해 권위에 대해 나의 타고난 반감이 커져갔고, 처음으로 노동계금의 존재를 충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버마에서 일해본  덕분에 제국주의 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만으로는 정확한 정치적 지향을 갖기에 부족했따. 그러다 히틀러가 등장하고, 스페인내전이 발발하는 등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1935년 말까지만 해도 나는 여전히 확고한 결단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 무렵 내가 쓴 짧은 시는 나의 그런 딜레마를 표현해준다.

 

200년 전이었다면, 나

행복한 목사가 됐을지도 모르지.

영원한 심판을 설교하고

제 호두나무 자라는 모습 즐기는

 

그러나 아, 사악한 시절에 태어나

그 좋은 안식처를 놓쳐버렸네.

내 윗입술엔 수염이 자랐지만

성직자는 다들 면도를 말끔히 하니

 

그러다 아직 살 만하다 싶고

만족도 잘하는 우리,

수심일랑 나무 젖가슴에 안겨

살살 흔들어 재웠지.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

지금은 숨기는 기쁨을 감히 인정했으니 

사과나무 가지 위의 방울새가

내 적들을 떨게 할 수 있다고 고백했으니.

 

그러나 처녀들의 배와 살구는

그늘진 냇물의 잉어는,

여명에 날아가는 오리는, 말은,

모두가 한낱 꿈이니.

 

꿈꾸는 게 더는 금지된 우리.

기쁨을 불구로 만들지 않으면 숨긴다.

크롬강으로 만들어진 말들을

작고 뚱뚱한 자들이 타리라.

 

꿈틀거려본 적 없는 지렁이요,

처첩 없는 내시인 나,

성직자와 인민위원 사이를

유진 아람처럼 걷는다.

 

인민위원은 라디오를 켜둔 채

내 운수를 점치고 있고,

사제는 더기로 밑질리 없다며

오스틴 세븐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나는 저택에 사는 꿈을 꾸었고

깨어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이런 시대에 맞게 태어난 사람은 아니니.

스미스는? 존스는? 그리고 당신은?

 

우리 시대 같은 때에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보기엔 난센스다.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그런 주제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그저 어느 쪽을 편들고 어떤 접근법을 따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의식하면 할수록, 자신의 미학적 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지난 10년을 통들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직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길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인 선전 글이라 해도 전업 정치인이 보면 엉뚱하다 싶은 부분이 꽤 많다는 걸 알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계속 살아있는 한, 그리고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지상을 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에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나 자신을 그러한 면모를 억누르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내가 할 일은 내 안의 뿌리 깊은 호오와 ,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는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을 화해시키는 작업이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자면 문장의 구성과 표현에 있어서의 문제가 발생하며 충실성의 문제가 새롭게 개입된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어다니지 않은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 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292-300쪽 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