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나 혼자 있다

현장체험학습 가야 하나요?

다시봉봉 2025. 3. 1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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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체험학습에 대한 이슈는 2022년 속초의 한 초등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 중 휴게소에서 일어난 학생 사망 사고 이후 본격적으로 두드러졌다.

다음 뉴스 캡쳐

 

초등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은 한 학기에 1회 이상 봄, 가을 2회 정도 한다. 예전에 소풍으로 말했던 현장체험학습의 목적이야 교실을 벗어나 학생들의 진로와 연계된 체험을 하거나, 교과 학습과 관련된 체험을 함으로써 다양한 능력을 신장시키고 경험하는 것이겠다.

 

초등교사가 된 이후 현장체험학습은 학생 때의 행복하고 설레는 감정과는 다른 노동이었다.

 

현장체험학습을 하기 위해 학기 초부터 체험장소를 선정하는 회의를 하고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예약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빠른 선점을 위해 누구보다 재빠르게 예약을 해야 하고, 버스를 계약해야 하며, 단가를 맞춰 예산을 책정하고 이를 계획서에 반영하여 학생과 학부모에게 안내장으로 배부를 한다. 체험학습 최소 몇 주 전에 해당 장소를 직접 가는 사전 답사를 업무 시간 중 해야 하며, 수업 후 가야 하므로 출장을 내더라도 초과근무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플러스로 학생 보험도 가입한다.

여기까지가 사전 작업이다.

 

본격적인 업무는 현장체험학습 당일이다.

아침에 비장한 각오를 하고 집을 나서야 한다.

교사 도시락은 기본으로 스스로 챙기거나 동학년에서 협의하여 챙기고, 보건실에서 주신 상비약, 멀미 대비 검은 비닐봉투까지 가방에 넣고 흥분한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에 탄다.

현장체험학습 전에 철저히 버스 좌석을 지정하고, 교통안전교육을 몇 번을 한다. 그럼에도 당일에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잔소리를 멈출 수 없다.

 

안전띠 하고 절대 풀지 말아라. 간식 먹지 말아라.

핸드폰 사용하지 말아라. 너무 크게 떠들지 말아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말하고 제일 앞자리에 앉으면 이동 장소까지 기사님 안전 운전하시는지 살피고, 뒤돌아보며 아이들 상태도 파악한다.

 

이따금 안전띠를 풀고 멀미가 심한 아이들 상태 살피고, 시끄럽게 하는 아이들 주의 주고, 제일 뒷좌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 짧은 거리는 휴게소를 들르지 않지만, 수학여행이나 장거리 체험일 경우는 휴게소까지 들르므로 아이들 잘 다녀오는지 온 감각을 다 동원하여 안전을 살핀다. 버스 앞자리에 멀미하는 아이들이 타는 경우가 많은데 종종 토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청소까지 교사의 몫이다.

 

현장체험학습 장소에 도착하면 자기 가방, 핸드폰 및 소지품 잊지 않고 잘 챙겼는지 한번 더 버스를 돌아보고 아이들과 함께 체험 장소로 들어간다. 자유 관람일 경우엔 1-2시간  아이들끼리 돌아다니는 경우, 혼자 있는 아이 다친 아이 있는지 체험학습장을 순회한다. 만들기 체험 같은 경우에는 강사의 보조로 손이 느린 아이를 돕거나 준비물을 나눠주고 챙기게 된다.  

 

좀 쉴 때는 점심시간이다. 아이들끼리 밥을 먹는 동안 교사들도 모여서 우리가 챙겨 온 점심을 먹는데 그때는 살짝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아이들이 얼마나 밥을 빨리 먹는지, 숨 돌릴 틈도 없이 가방을 챙기는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점심도 제대로 못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오후 체험까지 있는 경우 앞의 일을 반복하며 순회 지도, 체험 보조 등을 한다. 보통 체험학습은 6교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학교에 2-3시 정도에 돌아와야 하므로 돌아오는 버스에 타면 또 긴장이다.

 

대부분 버스는 해당 지역의 관광버스로 베테랑인 운전기사분들이지만 아침에 그분들 음주체크(행정실에서 보통 하지만 교사들이 하는 경우도 있음)까지 해야 하고, 운전에 너무 능숙하셔서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될 때도 많아 편안한 승객의 마음으로 버스를 탄 적은 한 번도 없다.

 

온몸이 긴장상태로 현장체험학습이 끝날 때면 학교에 도착하기 몇십 분 전 학부모들에게 안내 문자 또는 알림장을 올려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바로 하교하고 어디로 가는지 파악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내리고 난 후에는 버스를 꼭 둘러보아야 한다.  1-2명 가방, 소지품, 핸드폰을 놓고 가는 아이들이 꼭 있다. 그렇게 현장체험학습이 끝나면 큰 숙제를 하나 한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긴장이 풀리면서 몸살처럼 통증까지 생긴다. 온몸이 뻐근하여 다음날 수업이 있을 경우 아침 출근도 힘든 지경이다.  현장체험 학습 때 지출한 영수증, 카드까지 행정실에 돌려줘야 끝난다.

 

너무 징징대는 것처럼 들리는가?

입장 바꿔서 가족끼리 여행을 가는 것이 너무 잦은 요즘, 가족여행에서도 운전하는 아빠는 아빠대로 고생, 아이들 옷가지 챙기고 미리 예약하고 체험하고, 맛집을 찾고 하는 것들을 하는 엄마는(엄마 아빠가 나눠서 하는 집도 많음) 엄마대로 고생. 아이들은 뒷자리에 앉아서 멈추면 내리고, 끝나면 차에 타고 이런 과정을 하면서 많이 배울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힘들 것이다.

서넛밖에 안 되는 가족 여행도 하고 나면 지치는 게 당연한데 이삼십 명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현장체험학습은 교사 혼자 그 일 모두를 떠안아야 하는데 그게 정말 당연할까?

 

이렇게 부담스러운 현장체험학습을 교사가 된 14년 동안 안 갔던 적이 없다.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획서에 지도 교사 이름에 내 이름만 넣어도 별로 상관없었다.

어느 해인가 대회 지도로 여수를 가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교장선생임이 본인은 본인 차를 타고 가시겠다면서 지도 교사에 교장 이름을 빼라고 말했을 때 나는 이유를 몰랐던 초보 교사였다. 특수 학생이 있는 통합학급일 경우 특수 교사가 보조로 따라오시기도 하지만 반 20-30명 되는 아이들을 온전히 내가 떠안고 살펴야 하는데 이게 어찌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 가득한 현장체험학습에서 벌어지는 사고의 법적 책임까지 떠안아야 한다면 그건 거부하는 것이 맞다.

속초 현장체험학습 사망 사건이 진짜 교사의 부주의로 일어난 걸까?

아이는 신발 끈을 묶다가 이동하는 버스에 치여 사망하였다.

사고 버스 기사는 전방을 살피지 않고 출발하여 학생을 숨지게 한 책임을 물어 금고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학생들을 인솔했던 담임교사는 주의 의무 위반 과실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어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행동을 모두 예측하고 통제하기는 어려우나 운전기사와 선생님들이 각자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다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기에 기소가 불가피했다는 입장라는데 위에 쓴 것처럼 교사가 정말 의무를 다 하지 않았을까?

 

현장체험학습의 기대와 설렘으로 아이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날 친구들과 만들어갈 추억을 기대하며 맛난 도시락과 간식이 잔뜩 들어있는 가방을 들면서도 좋았을 것이다. 체험학습 몇 주전부터 누구와 버스에 타고, 어떤 도시락을 쌀 것인지, 용돈을 얼마나 받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하나하나 기대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사고가 일어날 것을 예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어나더라도 그게 내가 되리라고 생각했을까?

 

 

교사 10명 중 9명이 현장체험학습 시행에 반대한다고한다.

교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사고에 대해서 도의적 책임을 넘어 법적 처벌을 받게 된 이 상황에 그 부담을 껴안고 누가 현장체험학습을 지도할 수 있을까?

그동안 나에게 이런 사고가 없었던 것이 단지 내가 예방 교육을 잘하고 안전 지도해서가 아니라 운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앞으로 나에겐 이런 일이 안 생길 거라고 확신할 수 없는데 모든 책임을 떠안고 가야 하는 현장체험학습을 가고 싶지 않다.

연합뉴스 기사 중 일부 캡쳐

 

고맙다고 음료수 한 병 건네주는 부모님 안계신다.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고생했다고 알아주라는 것도 아니다.

교사가 안전한 현장체험학습이 이뤄지기 위해 노력한 점 고마워하라는 것 아니다.

교사가 책임질 수 없는 것까지 책임지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속초 현장체험학습 사고로 유가족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감히 말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지도 교사가 법적 책임을 지고 유죄 선고를 받는 것이 유가족의 고통을 더는 방법일까?

지도 교사 역시 학생을 잃은 피해자 아닐까?

평생을 학생 사망의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교사의 고통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현장체험학습 실시 여부를 의논하는 전체 회의가 다음 주에 있다. 아마 많은 선생님들이 반대할 것이다. 우리 학년에서도 6명 전원 반대를 하셨다.

사고가 일어난 후 책임을 묻기 전에

학생과 교사의 안전이 우선이다.

 

(혹시 이글을 읽으시는 학부모님 계시다면 반대 의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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