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남자와 여자에 관한 보통의 연애 이야기로 시작하자. 만난 지는 몇 번이지만 아직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지 못한 채 주말이 되었다. 서로 바빠서 얼굴만 두어 번 보고 연락만 주고받는 요즘 말로 썸을 타던 시기였다. 토요일 오후 남자는 여자가 퇴근하기를 기다렸고 여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어디를 갈 거냐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편다. 그날 갈 곳과 여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처음 데이트를 한 곳은 순천이었다. 사람이 많았고 이제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고 하늘이 높고 파랬다. 순천으로 향하던 차 안의 공기가 선명했고 시간은 더디 흘렀다. 이야기는 조잘조잘 끊어지지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먹했던 것은 아직 사이가 분명하지 않아서였을까 여자가 물었다. ..